2000.08.15 11시에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녘의 동생 오영재 시인
100쌍의 가족이 COEX 컨벤션센터에 모였는데 우리에게 배정된 테이블은 19번이었다.
우리 가족 대표로 그곳에 갔던 남매들. 한 가정당 5명이 배정 되었는데 사진에는 숙부 한 사람이 빠졌다.
첫 만남-형과 동생
적십자 회원과 영재
좌로부터 승재(한남대), 영재, 형재(서울시립대)
북녘에서 동생이 가져온 큰 선물은 돌판에 새긴 부모님 초상과 어머니 팔순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그곳에 아버지와 자신을 끼워 넣어서 만든 돌판 합성 사진이었다
(컴퓨터로 천연석을 쪼아 만든 돌사진). -상하 사진을 비교해 볼 것
19번 테이블의 표지판이 눈에 보인다. 좌측으로부터 형재, 필숙(여동생), 적십자 직원,
병채(숙부), 근재(홍익대). 뒤로 YTN 취재기자도 보인다.
이별 때 아쉬어하며 손을 못 놓는 영재와 남녘 막내 여동생. 자료사진
동생이 모란공원 묘지에 가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에 후에 가족들이 모여 부모님 영전에
그가 가져온 영전 사진을 놓고 추도예배를 드렸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1995.04.03 떠나셨기 때문에 동생은 어머니를 추모하는 시,
추모곡 7편도 가져왔다.
추모곡
<련시>
1.무정
가셨단 말입니까
정년 가셨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그 비보를 믿고 싶지 않습니다
너희들을 만날 때까지
꼭 살아 있겠다고 하셨는데....
너의 작품, 너의 사진, 편지를 보는 것이
일과이고 락이라 하시며
몸도 건강하고 기분도 좋다고 하셨는데...
이 약속을 어기실 어머니가 아닌데
그 약속을 안 믿을 아들이 아닌데
아, 약속도 믿음도
세월을 이겨낼 수 없었단 말입니까
리별이 너무도 길었습니다.
분렬이 너무도 모질었습니다. 무정했습니다.
2. 슬픔
차라리 몰랐더라면
차라리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해 버리셨다면,
속고통 그리도 크시었으랴
통일이 되면 아들을 만나
불러보고 안아보고 만져보고 싶어
그날을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더는 못 기다리셨습니까 어머니
그리워 눈물도 많이 흘리시어서
그리워 밤마다 뜬눈으로 새우시어서
꿈마다 대전에서 평양까지 오가시느라 몸이 지쳐서...
그래서 더 일찍 가셨습니까.
아,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 나의 엄마!
그래서 나는 더 서럽습니다. 곽앵순 엄마!
3. 사랑
한해에 두 살씩 어머니 나이까지 내가 먹겠으니
어머니는 더 늙지 마시라고 시를 써 보냈더니
어머니는 편지에 썼습니다.
<<네가 건강해야 가족이 건강하고 또 혈육이 서로 만
날 때 건강해야 하니까 한해에 두 살씩 엄마 나이까지
먹지 말고 네 나이만 먹고 늙지 말아라>>
세월에 자비가 없어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리 없건만
사연이 너무 간절해서
만약에 기적이 생겨
어머니 앞에 흐르기를 멈추려 했던들
어머니는 마다 하셨으리
마다하시며, 마다하시며
오히려 아들이 더 늙지 않게
이 아들 앞에서 멈춰달라 세월에 부탁했으리
그래서 아들 몫까지
한해에 두 살씩 어머니 잡수시어
그리도 일찍이 가셨습니까
아, 아, 어머니!
4. 기어이 안기고 싶어
머리맡에서 어머니의 림종을 지켜드린 형님이여,
동생들이여
어머니께서 눈을 감으시기 전에
제 이름을 부르지 않습디까
제 사진 보고싶다 하시지 않습디까
제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하시며
주름 깊은 눈가에 이슬이 맺히지 않습디까
아, 사람들이 바라온 대로
죽어서 가는 다른 세상이 있고
어머니가 그 세상에서 다시 살게 되신다면
내 어머니 간 길을 찾아가리다
아이 적처럼 어머니 품에 기어이 안기고 싶어
눈물이 아니라 그 웃음을 보고 싶어....
그 세상엔
분계선이 없을 것 아닙니까
콩크리트 장벽도 없을 것 아닙니까
5. 남쪽 하늘
비보를 받은 날
제삿날은 아니지만
따로난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불러
어머니 령전에 절을 드려 명복을 빌었습니다
아침저녁 바라보던 어머니 사진
통일되는 그날까지 살아 계십시오
그렇게 간절히 기원한 그 사진에
눈물 젖은 손으로 검은 천을 드리웠습니다
통일되어
내 남행길에 오르게 될 그날
십리 밖에서부터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며 달려가려 했는데
이제는 누구를 부르며
고향집 문을 열어야 합니까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바라보던 남쪽 하늘
살아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움의 눈물을 가득 담으시고
내 눈에 비쳐왔는데
어머니가 비끼던
그 한쪼각 푸른 하늘마저
이제는 어머님 안 계시니
영영 깨어져버리고
슬픔의 어두운 비구름에서
눈물의 빗방울만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6. 편지
어머니 보내주신 편지
그 몇 번 다시 보고 또 읽어본 편지
정 깊은 그 눈빛이 비치었고
따스한 손길이 스쳐간 편지
다심히 마음이 깃들고
인자한 목소리가 스민 편지
젖은 볼에 대어도 보고
가슴에 품어도 봅니다.
가셨으니
아, 가셨으니
이제는 이 편지가 어머니입니다.
7. 그리움이 가기 전에
* 이 당시의 상봉 수기는 이 글의 상봉 수기(적색)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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